CRITICAL TEXT
이름과 사물 사이( 이니마 개인전)/ 2026. 8
진동하는 사이-세계
The Oscillating World In-between
강지선(홍익대학교 연구교수, 미술비평)
‘사이’와 ‘다원성’에 대해 사유했던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어두운 시대의 사람들(Men in Dark Times)』에서 “세계와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동일하지 않다. 세계는 사람들 사이에 놓여 있다”라고 하였다. 이 말은 사람은 저마다 고유성을 지닌 존재이며, 세계는 그러한 다수의 사람 사이에서 출현한다는 의미로 다가온다. 여기서 아렌트가 말하는 ‘사이(in-between)’란 인간이 말과 행동을 통해 타인과의 공동 세계를 형성해 나가는 관계적 장이다. 그 사이-세계에는 인간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 만든 사물, 건축, 언어, 제도와 같은 ‘문화’가 인간과 인간 사이에 놓인다. 이러한 인공물은 인간 간의 관계를 매개하는 동시에 인간이 사멸성을 뛰어넘어 공동의 세계를 지속시키고, 다음 세대에 전수하는 물질적인 토대가 된다.
작가 이니마는 이러한 ‘사이-세계’를 탐구한다. 그의 사이-세계는 인간과 인공물, 나아가 자연이 서로 관계를 맺는 확장된 영역이다. 그러면 이번 전시에서 그가 말하는 사이의 세계로 좀 더 들어가 보자. 전시의 제목은 《이름과 사물 사이》이다. 먼저 사물이란 무엇일까? 사물은 언어를 통해 구체적인 의미를 획득하기 이전부터 물질로 존재하며, 우리는 그것을 몸으로 감각한다. 그리고 그 사물과의 관계 맺음의 과정에서 우리는 그것을 다른 것과 구분하고, 의미를 부여하며 이름을 붙인다. 이름은 사물을 공동체의 언어와 기억 속에 위치시키고, 타인과 그것에 관한 경험을 공유할 수 있게 한다. 반면 이름은 사물을 지시하고 의미화하지만, 사물의 물질성과 감각적 경험을 온전히 대신할 수는 없다. 사물에는 언제나 언어로 포착되지 않는 감각과 물질의 층위가 남기 때문이다. 이름과 사물 사이에는 그렇게 번역되지 않는 간격, 즉 틈이 존재한다. 그러나 그 틈에서 언어와 물질이 서로 관계를 맺고 공명한다. 이니마의 작업은 그런 사이의 세계에 관한 것이다. 그는 사물에 축적된 감각을 이미지로 표현하고, 언어를 통해 구조와 의미를 생성한다.
따라서 ‘사이’란 서로 다른 것이 분리와 연결을 반복하는 열린 공간이다. 이러한 분리와 연결의 운동 속에서 사이-세계는 진동한다. 이니마의 작업에는 생명체와 비생명체가 각자의 리듬을 주고받으며 진동을 생성하고 공명한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 진동하는 색 >이나 < 들이쉬기와 내쉬기 >와 같이 그의 작업은 고정된 세계가 아니라 움직이며, 진동을 전달하는 세계를 그려낸다. 나아가 전시장에 놓인 하나의 작업은 다른 작업과 서로 반응하며 리듬을 주고받는다. 원형과 사각형의 형태와 한지, 거울, 아크릴과 같은 재료, 흑과 백, 그리고 오색은 한 작업에서 또 다른 작업으로 이동과 변주를 반복한다.
그러므로 ‘사이’, ‘진동’, ‘리듬’, ‘공명’은 이니마의 작업을 나타내는 중요한 키워드이다. 이는 시각뿐만 아니라 청각, 후각, 촉각 등의 감각을 교차하는 작업 방식과도 긴밀하게 연결된다. 그는 다른 감각들이 횡단하는 구조를 통해 관람자의 몸 전체를 작품의 관계망 안으로 끌어들인다. 하나의 감각은 다른 감각을 불러내어 서로를 엮고, 감각의 경험을 확장한다. 예를 들어 < 들리는 풍경 >과 < 보이는 시간 >과 같은 제목에서 나타나듯이, 그는 하나의 감각에 틈을 내어 다른 감각들이 개입하게 하며 서로를 연결한다.
감각의 시원적 장소로서 제주
이니마의 ‘사이-세계’는 제주라는 장소에 뿌리를 둔다. 지리학자 이푸 투완(Yi-Fu Tuan)에 의하면, 장소란 단순히 물리적인 위치나 지도상의 좌표가 아니다. 장소는 우리가 멈춰 서서 애착을 갖고, 돌보고,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곳이다. 인간이 자기 경험과 의미를 투사함으로써 추상적인 공간은 구체적인 장소가 된다. 무엇보다 집과 고향은 나의 감각, 기억, 이야기가 시작되는 장소이다. 이니마에게 고향 제주는 이러한 감각의 시원적 장소라 할 수 있다. 그의 작업은 감각의 시작(씨앗)으로서 제주에 대한 기록이다. 작업 < 감각의 씨앗 >은 제주의 곳곳-갤러리 카페, 청음 카페, 식물 카페 등 오감을 자극하는 특정 장소에서 감각 경험을 담은 것이다. 빛과 소리, 냄새, 온도, 촉감, 그리고 거기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는 드로잉으로 기록되어 전시장에 그림책처럼 펼쳐진다.
특히 그의 마음이 가닿는 곳은 제주 공동체의 감각과 몸짓이 축적된 장소들이다. 마을의 신들을 모시는 본향당과 같은 제의적 장소들이 그 예이다. 그곳에는 탄생과 죽음, 희망과 공포와 경외와 두려움 등 인간의 근원적인 삶과 감정이 깃들어 있다. 이니마는 가족과 마을의 안녕을 기원했던 장소에서 무수한 몸짓과 감각의 흔적을 더듬고 상상한다. 거친 바다와 척박한 땅이 터전이었던 제주인들에게 제주는 삶과 죽음의 경계가 없는 장소이다. 가족과 공동체의 안녕과 수호를 빌지 않고는 살아낼 수 없는 이들에게 제의는 삶의 시작과 끝을, 이승과 저승, 바다, 하늘과 땅, 사람과 사람을 이었다. 이니마는 이렇게 제주 공동체의 감각과 감정, 욕망의 원형이 남아 있는 장소에서 몸에서 몸으로 전수되는 감각을 이미지화한다.
< 진동하는 색 >은 제주의 본향당과 신목인 팽나무에서 착안하였다. 주름진 원통의 관들이 연결되어 한 몸체를 이루는 형상은 땅에 뿌리를 두고 존재들을 매개하는 나무의 이미지이다. 관 끝에 달린 거울은 주변과 사람들을 비추며, 작품 내부로 끌어들인다. 구불구불한 몸체는 꿈틀거리며 진동하는 생명체처럼 다가온다. < 기억의 정원 >은 제주의 촘항에서 영감을 얻었다. 촘항은 물이 귀했던 제주에서 빗물을 받아서 저장하던 항아리이다. 댕기 머리처럼 꼰 짚(촘)을 나무줄기와 항아리에 연결하여, 하늘로부터 내린 물을 받아 생활용수로 바꾸었다. 항아리 형태의 세 개의 원형 틀 아래 한지 띠가 매달려 있고, 이 띠는 마치 촘과 같이 바닥에 놓인 먹물을 서서히 빨아들이며 아래와 위의 세계를 연결한다. 이처럼 이니마는 제주 고유의 장소와 사물을 하나씩 끄집어내며 자연과 문화, 사람의 관계망을 만들어 간다.
< 들리는 풍경 >은 제주의 관계망을 청각으로 재현한 일종의 소리 콜라주 작업이다. 이 작업은 작가가 직접 채집한 소리와 제주 아카이브에서 수집한 소리로 구성된다. 한지를 염색해 만든 원형의 스피커 구조체에서는 탄생과 죽음, 제의와 자연을 둘러싼 여러 소리가 들린다. 소리는 출생, 땅, 바다, 하늘, 죽음의 순으로 나열된다. 아기의 울음과 구덕 소리에서 시작하여 땅의 소리인 노루와 개구리의 소리, 밭매는 소리, 해녀의 노래, 까마귀와 휘파람새 등의 하늘의 소리, 굿 소리와 상여소리에 이르기까지 삶의 시작과 끝을 이으며 감각적 풍경을 형성한다. 소리는 가까이 다가가 귀를 기울여야 들을 수 있다. 점점 사라져 가는 제주의 소리는 의식 저 밑바닥에 잠자고 있던 감각과 기억을 깨우며 풍경으로 되살아난다. < 들리는 풍경 >에서 소리는 곧 풍경이다. 하늘과 땅, 안과 밖, 바다와 육지, 수직과 수평, 상승과 하강의 이미지가 교차하면서 ‘사이-세계’의 공명을 만들어낸다.
공동체가 문화를 전수하는 방법에는 언어라는 공통의 기호체계로 기록된 형태가 있다. 그러나 몸의 감각과 무의식적 기억으로 전수되는 문화도 있다.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일상적인 장소의 감각은 잘 의식화되지 않는다. 그러나 바로 그 무의식적인 감각들이 우리가 장소에 대한 앎(knowledge), 즉 장소성을 형성한다. 이니마는 무의식적인 층위, 몸에 반복적으로 기입된 장소의 오감과 기억을 지금, 여기로 소환한다. 그의 작업은 제주의 감각적 아카이브이다. 그는 텍스트를 병행하는 작업을 하면서 이러한 감각과 언어, 물질과 의미를 현재의 시점에서 직조한다.
움직이는 색의 기호들
이니마의 작업에서 색은 욕망, 금기, 운동을 암시하는 중요한 시각 언어이다. 검정과 흰색은 생성과 소멸, 탄생과 죽음의 의미를 내포하고, 오색은 생의 욕망과 에너지를 표현한다. 그의 색채는 제주의 자연뿐만 아니라 무속의 복식과 그림, 오색천과 같은 사물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색의 사회·문화적 기호는 이니마의 개인적 기호로도 변환된다. 일례로 그는 하얀색을 순수와 청결의 기호가 아닌 욕망이 한 방향으로 집중되면서 강박에 가까운 상태를 나타내는 것으로 설명한다. 따라서 그에게 색은 욕망의 움직임, 마음의 상태와 시간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인다.
< 하얀 까마귀의 노래 >는 하얀색과 검정, 오색의 대비를 통해 욕망과 금기, 수치심의 관계를 다룬다. 노란 메모 조각판들 앞에 오색 실과 하얀 술로 장식된 새장이 있고, 그 안에는 까만 까마귀 깃털이 들어 있다. 작가에 따르면 하얀 까마귀는 정상성에서 벗어난 존재이자, 숨겨진 욕망을 뜻한다. 새장 뒤 벽면의 글 조각은 예전 작업 < 환대받지 못한 것들의 마주침 >에서 관객들이 직접 기록하고 파쇄한 글들을 모은 것이다. 글의 파편들은 밖으로 꺼내지 못한 말들로, 내면화된 금기와 억압된 욕망의 흔적이 된다. 하얀 텍스트 조각들은 하얀 까마귀의 몸의 부분들로 보이기도 한다. 이 작업에서 흰색과 검정, 오색의 대비는 정상과 일탈, 욕망과 금기, 고백과 침묵 사이를 오간다. 색은 욕망의 드러남과 감춤, 그에 따른 마음의 상태를 가시화하는 물질로 작동한다.
< 기억의 정원 >은 색실이 감긴 금속망이 세 개의 원형 구조를 이룬다. 구조물 아래로 늘어진 종이 끈은 바닥의 재와 먹물에 닿아 점차 검게 물들어 간다. 여기서 오색실은 한 구조에서 다른 구조로 옮겨 가며 일정한 패턴과 질서로부터 이탈한다. 이로 인해 반복과 변주 간의 리듬과 감각의 흐름이 형성된다. 바닥으로부터 수직적으로 상승하며 은은히 피어오르는 검은 먹의 향은 시각뿐만 아니라 후각을 열게 한다. 하얀 종이와 검정 먹은 서로의 상태를 변화시키며 수평과 수직, 사라짐과 드러남을 가시화한다.
흑백의 대비는 < 보이는 시간 >에서도 이어진다. 이 설치 작업은 음양오행의 역법인 360일의 시간을 긴 타원 형태로 구현한 것이다. 목(동·봄), 화(남·여름), 토(중앙·환절기), 금(서·가을), 수(북·겨울)를 각각 72일씩 나누어 배치하는데, 토는 중앙을 횡단하는 십자 형태로서 환절기의 공간을 상징한다. 목·화·금·수의 공간 바닥에는 재가 깔리고, 환절기 공간인 토에는 하얀 모래가 놓여 있다. 종이에 번져가는 검정 먹은 절기의 시작과 변화하는 생명을 나타낸다. 아크릴, 하얀 모래, 재, 먹 등 서로 다른 물성으로 시간을 공간화한 이 작업에서, 색은 시공간을 분절하며 연결한다. 2026년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 보이는 시간 >은 작가의 시간에 대한 강박을 표현한 작업이기도 하다.
이니마의 작업에서 흰색과 검정은 생성과 소멸, 욕망과 금기 사이의 관계를, 오색은 이러한 경계 사이를 이동하며 생의 에너지와 욕망의 움직임을 드러낸다. 따라서 그에게 색은 몸의 감각과 기억을 호출하는 동시에 개인과 공동체의 욕망, 사적·문화적 기호를 잇고, 존재의 상태 변화를 나타낸다. 그에게 색은 ‘사이-세계’를 구성하는 하나의 감각적 물질이자 언어라 할 수 있다.
이니마의 사이-세계에서 색은 욕망과 움직임을 나타내고, 소리는 풍경을 불러내며, 종이와 실은 존재를 연결하고, 재와 먹은 생멸의 흔적을 남긴다. 여기서 물질과 언어, 개인과 공동체, 산 자와 망자, 자연과 인공의 세계, 과거와 현재는 얽혀 있다. 그의 ‘사이-세계’는 이러한 관계들이 진동하는 장이다. 그 세계는 다른 존재와 시간이 만나고, 기억과 감각이 이동하며, 새로운 형태로 변환되는 매개적 공간이다. 이니마는 제주에서 몸으로 이어지는 감각의 흔적을 물질과 구조로 번역한다. 그렇게 그의 작업은 기억과 감각의 복원이 아니라 이를 현재에서 호출하며 새로운 관계와 의미를 만들어낸다. 그에게 제주는 감각의 씨앗이다. 이니마의 작업은 이 감각의 씨앗이 몸과 물질, 언어를 통과하며 발화하는 ‘사이-세계’이다.